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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아 수초 개방

제나라 환공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왕이다. 그 유명한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 천하를 호령하는 패자가 되어 위세를 크게 떨쳤다. 제나라 환공에게는 세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역아, 수초, 개방이라고 했다. 환공은 이들을 몹시 총애하여 친하게 지냈다. 환공과 관중은 역아, 수초, 개방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환공이 어느날 사람 고기를 못먹어봤다고 하자, 궁중 요리사 역아는 자신의 아기를 바쳐서 환공에게 요리로 내놓았다. 환공은 자기 자식마저도 내버리는 그 충직함에 감동을 받았다. 관중은 인륜마저도 쉽게 저버리는 역아가 못버릴 것이 무엇이 있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절대로 등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수초는 환관인데, 원래 환관으로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도 스스로 생식기를 절제하고 궁에 들어와 환공을 모셨다. 환공..

춘추전국 2020.12.13

장이 張耳

장이는 전국시대~초한쟁패기 시대의 사람이다. 위나라 수도 대량 출신이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전하지 않고 기원전 202년에 죽었다고 되어있다. 일찍이 어린시절에 전국시대 4군자중 하나인 신릉군 위무기 휘하에 식객으로 있었다. 신릉군이 기원전 243년 사망하였으므로, 아마 기원전 210~200년경인 초한쟁패기 시점에서는 노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방이 기원전 247년, 항우가 기원전 232년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노익장을 발휘한 셈이다. 장이는 젊어서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어느날 외황이라는 마을에 들렀다. 외황에는 부호의 딸이 결혼을 했다가 문제가 생겨 돌아온 상태였는데, 누군가가 장이를 추천하여 장이와 결혼하게 되었다. 장이는 떠돌이 신분에서 많은 돈을 얻게 되었다. 그는 돈을 바탕으로 많은 ..

춘추전국 2020.12.13

전단

전단은 제나라 수도 임치의 시장 관리였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 경제진흥실 공무원 정도 될 듯하다. 이전의 행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쟁 전엔 위치상 별로 특별한 업적을 쌓지는 않았던 듯 하다. 제나라 민왕때, 제나라는 연나라를 쳐서 쑥대밭으로 만들고 송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제나라 민왕은 교만하여 다른 이들의 불만을 샀다. 결국, 연,한,조,위,진 5개국 연합국이 제나라를 급습한다. 제나라는 박살이 났다. 다른 국가들의 군대는 돌아갔으나 이전에 제나라에 침략당한 바 있던 연나라 군대와 그 장군 악의는 모든 성을 함락시킬 기세로 전쟁을 계속했다. 제나라는 수도 임치를 함락당하고, 전단은 피난길에 오른다. 그는 수레에 짐을 싼 뒤 수레바퀴의 튀어나온 축을 잘라버리고 철 덮개를 씌운다. 덕분에..

춘추전국 2020.12.13

서문표

서문표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업의 지방관이다. 위나라 문후때 업군에 지방관으로 발령받아 가게 되었다. 서문표가 업에 오니 엉망진창이라 답이 없었다. 서문표가 동네 노인에게 물었다. "이 동네는 왜 이꼴이오?" "업에서는 강의 신 하백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무당과 마을 장로, 관리가 갖은 호화로운 물건을 차려놓고 화려하게 제사를 지내고 이 비용을 백성에게 걷습니다. 또한 제사의 마지막에 하백이 부인으로 삼도록 마을 처녀를 강에 빠뜨립니다. 이래서 딸 가진 사람들은 도망가고, 남은 사람들은 세금에 신음합니다." 서문표가 매우 화가 났다. 하백에게 제사 지내는 날을 기다렸다. 제사날이 되자, 나이가 많이든 무당이 하백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서문표가 말했다. "처녀가 별로 안 예쁜것 같은데. 하백한테 가서 다..

춘추전국 2020.12.13

악양

악양은 전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이다. 악양의 아들은 중산국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위나라의 왕 위문후가 악양에게 물었다. ㅡ너의 아들이 벼슬살이하고 있는 나라에 쳐들어갈 수 있겠느냐 악양이 답했다. ㅡ가능합니다. 위문후는 악양을 시켜 중산국에 쳐들어가게 했다. 중산국 왕이 악양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협박했으나 악양은 겁먹지 않았다. 중산국 왕이 악양의 아들을 삶아 고깃국을 끓여 왕에게 보냈다. 악양은 고깃국을 다 마신 후 중산국을 멸망시켰다. 악양이 돌아오자 위문후가 크게 칭찬했다. 위문후의 다른 신하가 말했다. ㅡ자기 아들의 국을 먹은 사람이 못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위문후는 다시는 악양을 중용하지 않았다.

춘추전국 2020.12.13

사기 골계열전

사기 골계열전에는 재밌는 말로 사람을 깨우친 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재밌게 여긴 이야기들이 있어 적당히 옮겨 적어 본다. 진시황이 어느날 신하들에게 말했다. 짐의 사냥터를 더 크게 넓히고 사슴과 고라니를 풀까하는데 어떠하오? 신하들은 사냥터를 넓히려면 농지를 줄여야하는것을 알았으나 황제의 말이라 선뜻 반대하지 못했다. 한 신하가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적이 쳐들어오면 사슴이랑 고라니로 막으시죠 ㅋㅋㅋ 진시황이 그만두었다 초나라 장왕이 아끼던 말이 죽었다. 왕은 몹시 슬퍼하며 말에게 귀족 사람이 죽은것처럼 장례식을 치뤄주도록 명했다. 신하들이 반대했으나 장왕은 억지를 부렸다. 그때 어떤 신하가 말했다. 위대한 초나라 왕이 아끼던 말이 죽었는데 귀족의 예에따라 장례지내는게 말이됩니까? 까짓거 왕 ..

춘추전국 2020.12.13

등지 백묘 鄧芝 伯苗

등지는 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이다. 자는 백묘이다. 생년은 전하지 않으나 247년에 종예가 등지보고 칠십이라 하니 못해도 177년이전 출생이다. 251년에 죽었다. 원래 후한의 사도 등우의 후손이다. 의양군 신야현 사람이지만, 한나라 말년에 혼란스러운 천하를 피해 촉나라에 들어갔다. 등지는 유장밑에서 중용되지 않았지만 익주 종사 장유는 등지의 관상을 보고 등지가 일흔이 넘어서 대장군이 되고 후로 봉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등지는 이후 파서태수 방희가 인재를 좋아한다고 듣고 방희를 따라갔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이후 등지는 비저각독이 되었다. 유비는 등지와 이야기를 하고 등지의 인물됨이 범상치않다고 생각하여 등지를 비현 현령, 광한 태수로 승진시켜주었다. 등지는 지방관으로 청결하고 엄정하게 업무에 임했고 ..

삼국지 2020.12.13

요화 원검 廖化 元儉

요화는 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이다. 아마 188년 이전생일 것이다. (258년에 종예가 요화보고 우린 일흔이 넘었잖아 이러는 기록이 있다) 자는 원검이다. 요화는 원래 형주 양양군 사람이고 이름도 요순이었지만 훗날 요화로 바꿨다. 관우를 모시며 관우의 주부를 지냈다가 관우가 패하자 오나라에 거짓 항복했다. 그 다음 자신이 죽었다하고 노모를 모시고 서쪽으로 달려서 자귀에서 오를 정벌하러 온 유비에 합류해 의도 태수가 된다. 유비가 죽고나서는 승상참군, 독광무를 맡았으며 우거기장군이 되고 가절을 받았다. 이후 병주자사에 중향후가 되었다. 요화는 성격이 과감하고 강렬했으며, 관위는 장익과 같고 종예보다 위였다. 강유의 대에 장익이 좌거기장군, 요화가 우거기장군을 맡았었다. 정사 삼국지 등장종양전의 종예전에 종예..

삼국지 2020.12.13

종예 덕염 宗預 德艶

종예는 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이다. 자는 덕염이며, 생년은 전하지 않으나 247년에 등지가 종예보고 예순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187년 이전에 태어났을 것이다. 촉이 항복할 무렵 장안에 가다가 죽었으니 264년 무렵 사망한듯 하다. 종예는 원래 형주 남양군 안중현 사람인데, 장비가 촉에 들어갈때 같이 따라갔다. 이후 제갈량에 의해 주부가 되었다가 참군우중랑장이 되었다. 제갈량이 죽고 장완이 권력을 계승하자 오나라는 제갈량이 죽은 탓에 촉나라가 약해져 위에 점령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위가 쳐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촉이 망해 위에 점령될 때에 분할에 대비하기 위해 파구에 수비병 만명을 증강했다. 이에 촉도 영안의 수비를 강화했다. 서로 위나라에 대응해 병력을 모아야하는 상황..

삼국지 2020.12.13

미축 자중 麋竺 子仲

미축은 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이다. 자는 자중이며, 생년은 전하지 않고 몰년은 220년즈음이다. 동해군 구현 사람으로, 선조의 대부터 계속 서주에 살면서 오랫동안 재산을 모은 대부호의 후손이다. 미씨 가문의 고용인만 1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엄청난 부호였던 것이다. 도겸은 한나라 서쪽 변방에서 반란군 토벌에 종사한 이후 서주목이 되었는데, 이때 미축을 불러서 별가종사로 삼았다. (그밖에도 도겸은 인재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서쪽 변방에서 동쪽의 서주로 부임한 도겸으로선 별다른 인적 네트워크가 없었을테니 지역의 유지이자 부호인 미축이 돕는다면 안정적으로 정치를 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도겸이 죽은 후에는 유비를 맞이했다. 유비가 원술과 싸우는 틈을 타 여포가 배신하고 하비성을 빼앗자,..

삼국지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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